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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나라를 구한 경북인의 힘

<기획시리즈> 경북의 정체성, 대한민국의 혼이 되다 Ⅲ. 한국 호국정신의 본고장

경북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쉽게 말하는 수구꼴통, 배타성, 불통이 진정 경북인의 생각과 행동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역사적으로 경북은 그 시대를 가로지르는 정체성을 갖춰 경북뿐만 아니라 나라의 갈 길을 밝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경북이 지키고 가꾸어 온 정신적 자산은 우리나라의 민족정신으로 승화돼 반만년 역사를 이루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화랑·선비·호국·새마을정신이다. 화랑정신은 호연지기와 심신수양을 통해 삼국 통일의 원동력이 됐고, 호국정신은 신라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난을 극복하는 힘이 됐다. 선비정신은 퇴계를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삶에 바탕을 둔 정신으로 삶에 대한 올바른 성찰과 올곧은 현실참여로 나타났다. 새마을정신은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정신으로 더불어 살아가자는 공동체 운동이자 상생의 리더십을 가리킨다. 이른바 화랑·선비·호국·새마을정신으로 대표되는 경북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보고 이 정신이 어떻게 한민족의 민족정신으로 성장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주


                매년 6월 열리는 의병의 날 기념식.

 

역사 속 발현된 경북인의 호국정신

 

고대와 중세를 이어온 경북 화랑과 선비들의 올곧은 신념은 근·현대에 들어 호국(護國)’이라는 가치관으로 이어졌다.

 

일제에 맞선 의병들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일어나 몸을 던졌고, 그러한 신념은 양반과 평민, 남과여,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경북인의 정신으로 승화됐다. 6·25전쟁 때는 낙동강전투에서 전세를 역전시키고 나라를 지켜낼 수 있던 원동력이 됐다.

 

20141231일 기준,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로 포상한 인원은 13,744명으로 이 중 경북인이 2,07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특히 서울 377, 경기 1,070명 등 다른 대도시의 포상자 수와 비교할 때 월등히 높아 경북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제에 저항한 자정순국자도 경북인이 가장 많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국의 우국지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일제에 항거했다.

 

1910년대 말까지 전국의 자정순국자는 90여명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20%에 이르는 18명이 경북 출신이다. 90명의 자정순국자 중 행적이 밝혀져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61명 중에서도 경북인은 17명으로 가장 많다.

 

경북인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시름하며 그저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격정적이고 능동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무엇보다 경북은 3·1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진 지역 중 하나이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정도도 다른 지역에 비해 극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경북은 전국의 유림들이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파리장서운동(1차 유림단 의거)의 본고장이다. 137명의 서명자 가운데 무려 60(43.8%)이 경북 출신이라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의성군에 위치한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사진/김희정 기자)

 

독립운동의 발상지 경북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항쟁으로 기록된 갑오의병은 1894621일 일본의 경복궁 난입사건인 갑오변란이 촉매제가 됐다. 당시 일본군은 경복궁을 침입해 왕실을 농락하고 국권을 무너뜨리는 파렴치한 행각을 벌였다.

 

갑오변란이 일어나자 공주유생 서상철은 18947월 초 안동 지역 일대에 의병 궐기를 호소하는 호서충의서상철포고문(湖西忠義徐相轍布告文)’을 발송했다. 격문의 요점은 725일의 안동향교 거사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었으나 안동부사의 저지로 실패했다.

 

그러나 서상철은 이에 굴하지 않고 비밀리에 안동 일대를 돌면서 2,0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했다. 이후 서상철이 이끄는 의진(義陳)은 일본군 병참부대가 있던 태봉(지금의 상주 함창읍)을 공격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일본군의 반격으로 참패를 당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독립운동사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한말 최초의 의병이 을미의병(1895)이라는 기존의 역사를 뒤집은 것으로, 경북이 독립운동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갑오의병은 비록 다른 지역 출신의 유생에 의해 발의됐지만, 대규모의 경북인이 거병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북인의 호국정신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1920년대 일제에 목숨을 걸고 무력으로 맞선 의열투쟁의 역사에서도 경북인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김시현, 김지섭, 이종암, 장진홍 등 대표적 인물이 바로 경북 출신이다. 의열투쟁의 대표적인 단체인 의열단 창립에도 경북인이 핵심 역할을 했다.

 

의열단의 최초 구성원에 대한 인적사항과 숫자는 자료마다 달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창단 모임참석자로 표기된 13(미상 1)과 창단 전후 행적을 추적해 볼 때, 개연성이 있는 5명을 더하면 최소 17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의열단 창립 조직원 17명 중 이종암, 서상락, 신철휴, 이수택, 권준 등 5명이 경북 출신이다. 또 경북인들은 만주 독립군기지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경북인이 주로 자리를 잡은 곳은 남만주와 밀산지역이었다.

 

남만주에는 이상룡, 김동삼 등 안동의 유림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 출신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다. 이들은 경학사, 부민단, 한족회,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서로군정서, 정의부, 혁신의회 등의 독립운동 조직을 주도적으로 건설했다.

 

의용단, 주비단 등 남만주 일대로 자금을 보내기 위한 비밀조직이 결성된 것도 대구·경북지역이다. 이처럼 경북인들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외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힘썼다.

 

그 어느 지역 보다 돋보였던 경북인들의 활약상은 경북이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그들의 희생과 고귀한 정신은 21세기를 사는 경북인들에게 자긍심과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화랑정신과 선비정신 등 경북의 위대한 유산을 이야기 하면서 호국정신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북 전역에 살아 숨 쉬는 호국의 역사는 우리세대가 재조명하고 계승해야할 민족의 혼()이다.

 

<참고자료-경북의 혼 한국정신의 창>


 (출처-경상북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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