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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애틋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무려 430여년 동안 무덤 속에 잠자고 있던 조선판 사랑의 편지가 발견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편지의 주인공은 조선 중기 고성 이씨 문중의 며느리인 ‘원이 엄마’.
고성 이씨 귀래정파 이응태(1556~1586) 무덤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는 가로 58cm, 세로 34cm 크기의 한지에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함께 누워 속삭이던 일에서부터 뱃속 아이를 생각하며 느끼는 서러운 심정, 꿈속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애절한 간청까지 절절하게 녹아 흐른다.
이 편지는 지난 1998년 옹정골 택지개발 과정에서 발견됐다.
발굴 당시, 장신의 건장한 체격에 턱수염이 단정한 준수한 얼굴을 가진 젊은이는 입을 꽉 다문 채 누워 있었다.
가슴 위에는 한지위에 빈 모서리까지 깨알 같은 글씨를 채운 편지와 미투리(삼껍질 등을 꼬아 삼은 신발), 꽃무늬 비단 치마저고리, 아기 저고리 등이 놓여 있었다.
미투리는 남편의 쾌유를 빌며 삼과 머리카락을 함께 꼬아 삼은 것으로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라는 글귀가 읽는 이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원본 편지는 형의, 만시, 미투리, 의복 등 다른 출토 유물들과 함께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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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원이 엄마의 애틋한 사부곡은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 불리며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와 ‘원이 엄마 한글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 표지논문으로 2009년 3월에 실리기도 했다.
또 소설(능소화)을 비롯해 무용(450년만의 외출), 영화(우리 만난 적 있나요), 가요(원이어매), 실내국악(능소화), 국악가요(무한지애), 오페라(원이엄마) 등 수많은 작품들로 만들어져 대중에 공개됐다.
‘원이 엄마’ 편지가 발견됐던 옹정골은 낙동강과 내성천이 합수되는 경승지(景勝地)로 오래된 소나무의 큰 뿌리가 우물 속에 들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옹정골은 개성부(開城府) 유수(留守)를 지낸 이굉(李肱)의 숨결과 손길이 묻어있다.
이굉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入鄕祖) 이증(李增)의 둘째 아들로 25세에 진사, 40세에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지평·상주목사·개성유수 등을 지냈다.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삭탈관직(削奪官職)되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다시 기용되었으나 연로해 벼슬을 사양하고 안동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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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을 대표하는 문화유적인 귀래정은 이굉이 조선 중종 8년(1513)에 지은 정자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7호이다. 정면 4칸 배면 2칸의 一자형 팔작지붕으로, 창문에 중간설주(中間楔柱)가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는 주인 이굉을 비롯해 이현보(李賢輔), 이우(李堣), 이식(李植), 윤훤(尹暄) 등 30여 명사의 시판이 걸려 있다.
안동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월영교는 ‘원이엄마’의 미투리 모양을 담아 다리를 놓았다는 점도 알고 둘러보자.